0299. 그땐 너무 어렸다

2,3년 전에 문득 떠오른 기억인데 어찌어찌할까하다가 끄적여두렵니다. 본문은 반말…이라기보다는 독백입니다. 과거를 들추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벌써 십(삐-) 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 시절, 그러니까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6학년인 나는 같은 반의 A를 좋아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고 아마 지금도 모를거라고 생각한다. 당시 학급이 남자 아이들 그룹과 여자 아이들 그룹으로 나뉘어있어서 더 숨기게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어려서 내 마음이 어떤 것인지 나도 잘 몰랐던 것일까. 그건 내성적이고 사교성이 부족했던 그 시절의 내가 가진 작은 비밀이었다.

그 때 우리 반은 정기적으로 담임 선생님이 매번 다른 방식을 이용해 남녀 짝을 새로 정했다(남자가 두 명 정도 많았던가). 그리고 그 A와는 한 번(아니 두 번?) 짝이 된 적이 있다. 기억하기로는 담임 선생님의 짓궂은 짝 정하기 방식에 쑥쓰러워하는 척하며 나는 귀에 걸린 입을 필사적으로 가려야했다. 그리고 그 날, 어느 짝 정하는 날에 나는 다시 A와 짝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전학 왔을 때 B는 마침 짝이 없던 내 옆에 앉게 되었다.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어느 정도 사이 좋게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키가 상당히 컸다는 것 이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을 정도로 B는 내 관심을 끄는 아이가 아니었다. 키에 대한 것도 내가 키가 작은 편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대조가 되어 인상에 남아있을 뿐이다. 내가 바로 몇 년 전에 그 때의 일을 기억해내기 전까지는. B가 전학온 이후의 어느 짝 정하는 날이었다.

그 날도 짝 정하는 방식은 언제나처럼 짓궂었다. 선생님은 쪽지에 자기 이름을 쓰고 짝이 되고 싶은 사람을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써서 내라고 하셨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서로 앉고 싶은 사람끼리 최대한 앉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쪽지의 내용은 쓴 사람과 선생님만 아는 것으로 하고. 지금 생각하면 겸사겸사 학생들의 마음 같은 걸 짚어보려는 방법이었던 것 같지만 어린 그 때에 그런 것까지 생각했을 리가 없다. 나는 1번에 A를 쓰고 한참 고민하다가 2,3번에는 반장과 반에서 가장 인기 있던 아이의 이름을 썼다. 나머지를 표(?)가 몰릴 쪽의 이름으로 채워서 A와 짝이 되어보겠다고 나름 머리를 썼던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쪽지 정리가 끝나고… 나는 B와 다시 짝이 되었다. 그리고 A는 마지막까지 짝을 찾지 못하고 결국 마찬가지인 한 남자 아이와 짝이 되었다.

당시의 나는 담임 선생님이 전학생인 B를 배려해서 한 번 짝이 된 적이 있는 나를 다시 짝으로 배정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B를 쓰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초반에 짝이 되어버렸으니까. A가 내 이름을 쓸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A가 짝을 못 찾았다는 것은 일방적으로 A의 이름을 쓴 나와 짝이 되어도 되는 것 아닌가하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불과 2,3년 전에 이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 때의 일이 이해되었다. 그건 B가 내 이름을(어쩌면 내 이름만) 썼다는 얘기잖아.

그야말로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였다, 나는. 내가 그 때 바랐던 것이 B에게서 나에게로 적용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왜 그 때의 나는 선생님의 독단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일까. 십(삐-) 년 전의 일이라 왜곡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B에게 물어봤어야 했다. 그 정도로 남을 생각해볼 수 없다면 자신이라도 생각해서 A에게 말하기라도 했어야했다. 남도 나도 배려하지 못한 아이. 확실한 것은 그런 것을 생각하기엔 그 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는 사실이다.

…라는 이야기인데 이 정도까지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보니 예상보다는 덜 민망하군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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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10개 »

Gravatar Comment - 이솔레스티 (#)
2006-10-18 02:11:03

-_-

Gravatar Comment - 한님 (#)
2006-10-18 02:54:12

왠지 읽은 것을 후회하는 듯한 표정이군.

 
 
Gravatar Comment - 소금이 (#)
2006-10-18 05:22:07

무언가 조금 미묘한 이야기로군요. 그러나 한편으론 공감이 간다는…

Gravatar Comment - 한님 (#)
2006-10-18 09:51:54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도 되니까요.

 
 
Gravatar Comment - 미고자라드 (#)
2006-10-18 13:34:30

-_-

이군요.

Gravatar Comment - 한님 (#)
2006-10-18 15:34:44

미고자라드님도 마찬가지인겁니까.

 
 
Gravatar Comment - CultBraiN (#)
2006-10-20 14:14:55

짝궁이 누구냐가 무척 중요하던 어린 시절이군…
난 왠지 담임선생님이..
쪽지는 않보고 그냥 정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음모인가.

Gravatar Comment - 한님 (#)
2006-10-20 14:54:00

옷… 그럴 가능성도 있겠군, 로망은 부족하지만.

 
 
Gravatar Comment - mini (#)
2006-10-21 07:43:27

lol

Gravatar Comment - 한님 (#)
2006-10-21 15:01:46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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